[산티아고 순례길] 창작소설 까미노로 가는길 4편
다음날은 각자의 일정이 달랐기 때문에, 그 하루를 기점으로 모두는 각자의 일정들에 맞추어 걸음을 걸었다. 누군가는 빨리 가기위해 더 많은 거리를 걸었고, 누군가는 보통의 걸음을, 누군가는 자신에 맞추어 적은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모두는 헤어졌다.
왠지 모를 강박관념에 늘 평균의 삶을 살아야한다고 압박 받아왔던 민기는 남들이 걷는다는만큼 걸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적당히, 평균적으로, 남들이 해야 하는 것만큼 하는 게 가장 좋은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민기였다.
한참 걸어가는 길에 만나게 된 벤자민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굉장히 친절했다. 특히 여성에게. 굉장한 매너를 구사했다. 물론 남성에게도 친절했으나 굉장히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이탈리아 남자인가?'하며 민기는 그 모습이 재밌기도 같이 다니게 되었고, 벤자민 덕분에 벤자민과 일행이었던 일본인 여성 나유타와 장난꾸러기 이탈리안 할아버지인 사비노, 푸근한 인상을 가진 스페인 아저씨 빠꼬와 일행이 되었다. 굉장히 다국적의 일행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일본인 나유타는 민기가 기본에 봐왔던 몇몇 여행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뭐랄까.. 생각이 굉장히 진취적이었고 의존적이지 않았다. 이 곳에서 겪어야할 스스로의 몫을 스스로가 담당해야 하며 또 그러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15키로가 넘는 배낭을 낑낑대면서도 절대 도움을 받지 않았다. 자신의 무게는 자신이 감당해야한다고 했다. 그 말이 크게 와닿는 민기였다.
그렇게 수비리라는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각자 씻고 빨래를 널고 낮잠을 청했다. 이 곳에서는 도시 사람이 본다면 꽤나 단조로운 일상이 지속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야할 길을 향해 걸어가고, 그 안에서 풍경을 보고 쉬어가기도 하며, 자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을의 숙소에 도착해선 땀을 씻어내고 빨래를 말리고 낮잠을 청한다. 이 곳의 햇볕은 꽤나 강렬해서 한 두시간 낮잠을 청하고 나면 볕에 널어놓은 빨래가 어느새 말라 다시 입을 수 있을 정도였다.
민기는 이들과 함께한 일정이 좋았기에, 서로 걸음을 맞추며 많은 날을 함께했다.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지만, 민기한테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유쾌했다.
하지만, 민기는 그들 중 스페인 아저씨인 빠꼬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날은 빠꼬와 함께 걷게 되었는데 빠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하고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가라며 소심해지는 민기였지만, 나중에 사비노에게 들은 이야기로 빠꼬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민기 역시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할 순 없었지만, 민기는 빠꼬에게서 진한 정을 느껴가는 중이었다.
또한, 박학다식 했던 사비노는 민기에게 까미노 스승과 같았다. 건축양식이면 건축양식, 까미노를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로마유적들이나 옛 건물들에 대한 설명부터, 음식들에 대한 상식, 그리고 적절한 유머들까지.. 아는 게 굉장히 많았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을 벌써 여러번째 걷기 때문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부터 지금 나이가 들때까지 가능할 때마다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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