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창작소설 까미노로 가는길 3편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민기는 승형이 이 길을 걸으러 오게 된 이유도 듣게 되었는데 승형은 사실 한국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참 열심히 변호사일을 하던 그는 갑자기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일을 잠시 쉬게 되었고.. 고민 끝에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회의감이 해결된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전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그 시간동안 꼭 자기가 평생해보고 싶던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것이 이 까미노를 끝까지 해내는 것이었다고.. 승형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날의 식사는 민기에게는 정말 잊기 어려운 즐거운 추억의 자리이기도 했다. 로컬한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 자체도 민기에는 신기했고, 미국, 오스트리아, 한국,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즐기고 서로를 알아가는 그 모습은 충분히 사랑이 넘치는 식사자리었기에 민기는 가슴 한편이 그저 따뜻했다.
다음날인 첫 날은 굉장한 일정이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가이드북을 펼쳐보니 까미노 일정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민기는 아침 7시쯤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이미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사람들이 출발 한 상황이었다. 오래 걸릴수도 있다고 하니 다들 일찍 길을 나선 모양이었다. 모든 짐을 챙긴 민기는 마침내 첫 걸음을 떼었다. 약 10KG이 넘는 배낭, 그리고 등산화 하나 의지하고 과연 나같은 사람이 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뒤로 하며 약 860km의 여정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민기에게 이 곳은 참 신기한 곳이었다. 평소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과 데면데면 했던 민기였는데, 이 곳 사람들은 HOLA!라는 단어하나로 금세 친해지고 서로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곤 했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산맥들을 한참 넘고 있는데, 한국 여자 한명이 울고 있었다. 다가가서 왜 우느냐고 물어보니 바람이 너무 쎄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다소 어이가 없던 민기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갔다. 23살 다은이는 이곳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남들은 여행이라고 관광지도 많이 가고 휴양하러 많이 가지만 자신은 무언가 남길 수 있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길을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기도해서 그 사람들이 배낭, 옷들까지 빌려줘서 없는 살림에 이 곳까지 아껴서 어찌어찌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기는 굉장히 이 친구가 참 당차고 소신있다는 생각했다. 평소 하고자 하는게 있어도 늘 다음에.. 지금은 못하니까..라고 생각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피레네 산맥 중간에는 국경인 듯 국경 같이 보이지 않는 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국경이었다. 그걸 넘어가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국경이라는 게 이리도 넘기 쉬운 것이었던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보면 국경은 마냥 넘기 어려운 것으로만 여겨지기에 이렇게 국경을 넘어보는 경험 자체도 민기에게는 마냥 신기했다.
마침내 피레네 산맥을 다 넘고 하루만에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드에서 스페인 땅인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었던 그 곳은 수도원을 개조한 숙소,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컸다. 약 200명이 묵는 숙소였다.
그 곳에서 민기, 아저씨, 승형이형와 다은이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일행이 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민기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슬쩍 털어놓기도하고, 또 들으면서 자기의 그동안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하나 해낸 것 없는 것 같던 자신이, 무엇하나 즐겁지 않던 자신이.
하지만 지금은.. 정말 즐겁다는 생각을 하는 민기였다. 무엇이 즐거울까? 하루종일 힘들게 산맥을 걸어 넘어왔는데.. 겉으로는 고생이지만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리고 삶의 이야기들이 민기에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저 즐거웠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신기했다. 그냥 이런 즐거움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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